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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저리 이야기
삼남자의 제천 방문기
- 영* *
- 조회 : 4164
- 등록일 : 2023-11-19
안쌤 가라사대, “재학생은 바쁘니까 세저리 이야기는 너희가 써.”
(저희도 재학생입니다...)
이 글은 박시몬·조성우·윤준호, 15기 삼남자가 제천에 다녀온 이야깁니다.
지난 12일 충북 제천시 세명대학교 문화관에서 삼남자가 시내에서 사 온 간식을 들고 단비서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준호 기자
왜 갔을까요. 한 달여 전 어느 밤, 영등포역 인근 국밥집에서 만난 박시몬과 윤준호는 술잔을 기울이며 기자 생활을 하며 느낀 나름의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밤은 깊어져 가고 우리는 흔들렸습니다. 우리는 기자가 왜 되고 싶었던 걸까, 이렇게 생활하면 좋은 기자가 될 수 있을까.
지난달 2일 서울 영등포구 한 국밥집 밥상머리에서 윤준호·박시몬(왼쪽부터)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지난달 2일 서울 영등포구 한 국밥집 밥상머리에서 윤준호가 조성우와 통화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우리는 지난 12일 정오를 조금 넘은 시간 제천에서 만나 송학반점에 갔습니다. 학생일 땐 비싸서 먹지 못한 깐풍갈비도 시켰습니다. 시키긴 했는데 여전히 비싸게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식사는 짜장과 짬뽕밥 2개만 시켜서 나눠 먹었습니다. 그래도 배불리 먹었습니다.
지난 12일 충북 제천시 송학반점에서 삼남자가 깐풍갈비를 시킨 기념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준호 기자
밥을 먹은 뒤 비룡담저수지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역시는 역시. ‘제-베리아’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따뜻한 남쪽 도시, 부산에서 올라온 조성우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추위에 몸서리쳤습니다.
각자의 ‘취재보도’담을 나누고 고민을 나누니 세저리 마을에서 생활하던 때 같았습니다. 고민에 대한 답을 찾을 순 없었지만,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기분에 우리는 칼바람에도 한 시간여를 걸었습니다.
지난 12일 충북 제천시 비룡담저수지 둘레길에서 조성우·박시몬(왼쪽부터)이 다음 주 발제를 고민하고 있다. 윤준호 기자
12일 저녁엔 안쌤을 만났습니다. 고칠 게 많아서였을까요. 당초 1시간30분만 있다가 가겠다고 하신 선생님께선 5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술과 고기, 경험과 지식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저희를 A/S해주셨습니다. 감화돼 술자리에서 몇 마디 메모했는데 안타깝게도 술이 깬 뒤 다시 보니 대부분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군요.
지난 12일 충북 제천시 행복한숯불갈비에서 삼남자와 안쌤이 술과 고기를 앞에 두고 흥겨워하고 있다. 윤준호 기자
그래도 떠오르는 말씀 몇 가지를 아래에 붙입니다.
“마와리개론을 열 테니 학교 더 다녀.” _찡찡대는 경찰기자 3명에게
“무언가에 대해 느낀 충격을 전달하려면 지식이 필요해.” _12일간 뉴욕 출장 소감을 물었더니 ‘좋았다’고 말하는 윤준호에게
“10번 물으면 9번 거절당하는 걸 당연하다 생각해.” _마와리가 싫다는 박시몬에게
“어느 산을 오르려고 마음 먹었으면 멀리 보지 말고 차근차근 올라. 일단 한 봉우리에 올라가면 다른 산과 능선이 보이는 법이야.” _선생님 퇴직하면 뭐 하실 거냐고 물은 윤준호에게
“거기 어떻게 들어가? 나도 시험 칠 수 있니?” _조폭 결혼식 취재담과 선배 자랑을 늘어놓는 조성우에게
감나무 밑에서 사진도 찍었습니다.
지난 12일 충북 제천시 서부동 한 담벼락 앞에서 삼남자와 안쌤이 감나무를 보고 신난 모습이다. 윤준호 기자
횟집에서 2차 A/S를 진행했습니다. 안쌤은 역시 ‘제천 앞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라 맛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지난 12일 충북 제천시 호숙이막회에서 주문한 '제천 앞바다' 물고기의 모습이다. 박시몬 기자
선생님께서 귀가하시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치킨에 맥주 한 잔을 더 하려고 했지만 배달이 늦어 그러지 못했습니다.
지난 12일 충북 제천시 서부동 인근 숙소에서 윤준호·조성우(앞에서부터)가 같은 자세로 누워 치킨을 기다리고 있다. 윤준호는 치킨이 오기 전 그만 이 상태로 잠들어 버렸다. 박시몬 기자
다음 날 아침 삼남자는 목욕재계를 위해 제천 시내에 있는 청운목욕탕에 갔습니다. 탕이 하나밖에 없는 작은 동네 목욕탕이었지만 맑은 온천수로 운영하는 곳이었습니다.
해장은 삼남자가 세저리에서 만나 처음 끼니를 함께한 ‘내토한방국밥과밀면’에서 했습니다. 맛있는 국밥을 먹으며 우리는 내일 발제 생각에 괴로워했습니다. 식사 후 '슬램덩크'를 비롯한 좋은 책들이 있는 제천 명물 카페 '관계의미학'도 갔지만, 잠시 앉지도 못하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습니다. 주말이지만 집에 얼른 가서 발제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13일 충북 제천시 내토한방국밥과밀면에서 삼남자가 국밥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준호 기자
제천 방문기는 여기까집니다.
제천에 다녀온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세저리 이야기를 쓰려고 박시몬·조성우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우리는 전처럼 힘들었습니다.
안쌤의 A/S가 실패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우린 여전히 괴롭지만 이제 적어도 불안해하진 않기로 했습니다.
안쌤은 문화관 407호에서 연거푸 "기자·피디가 될 것을 의심하지 말라"고 일러주셨습니다.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박시몬 기자
우리는 또 다른 믿음을 가지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 믿음은 제천에서 본 감나무처럼 매섭고 추운 겨울에도 우리가 열매를 맺게 할 겁니다.
고민하면서도 성실하게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탁월한 취재보도를 할 수 있다는 믿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