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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저리 이야기

10년 이상 저널리스트를 할 거라면...

  • 리얼숲
  • 조회 : 338
  • 등록일 : 2025-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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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일기 같은 지난 글을 좋아해 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약간 뻘쭘합니다. 

물론 혹자는 왜 일기를 세저리이야기에 쓰냐고도 했습니다. 

기록에 의의를 둔 것이니, 누가 보고 ‘피식-’ 했다면, 또 ‘음 이런 삶을 살았군’한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이전 편에 이어 제 취재의 다음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3. 독립축구구단, FC아브닐



1학기 안쌤의 취재보도론 시간이었습니다. 피처 기사 발제를 해야했죠. 

그때까진 전 계속 킬을 당했습니다. 약간 오기가 올라오더군요. 

‘안쌤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라는 마음이 스멀스멀 생겼습니다. 

지금은 동아일보로 떠난 당시 제 룸메 승연이형은 드르렁 자고 있는 동안, 

새벽 3시까지 인터넷과 기존 기사들을 뒤져가며 지역의 한 독립영화관에 일하는 젊은 여성 영사기사를 알게 됐습니다. 


드디어 취재보도론 시간에 첫 아이템 통과를 받았습니다. 인터뷰이와 약속도 잡았습니다. 

그런데... 

당일 대전으로 찾아간 제게 인터뷰 거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전날 통화에서도 뭔가 주저하는 낌새가 보였습니다. 

간곡히 부탁하고, 설득하며 승낙을 받아낸 것인데, 갑작스레 얼굴을 보자 인터뷰 하기 그렇다는 말을 꺼냈습니다. 

30분 넘게 현장에서 다시 설득했으나, 어쩔 수 없었죠.


돌아오는 기차에서 제 생각은 하나로 모였습니다. 

‘그럼 이제 어떤 아이템 찾아야 하지...’ 

2시간 동안,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렸습니다. 그때 안쌤 말씀이 떠오르더군요. 


“원래 프로 기자, PD들은 문제의식에서 비롯해서 아이템을 찾아낸다. 

하지만 너넨 아마추어 좋게 봐도 세미프로다. 그냥 아이템에서 문제의식을 발견해라.”


일종의 반발심이었을까요. ‘나도 프로처럼 해 볼래’라는 오기가 또 생겼습니다. 

마침 직전 프로그램에서 MZ세대를 다룬 적이 있었습니다. 

취재와 제작을 하며 사회가 오해하는 MZ세대는 무기력, 포기, 게으름, 오만 등으로 가득 차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뒤집어 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그런 고정관념을 엎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없을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보여준다면, 

그건 그거 대로 아이템이 되는 것 아닐까. 달리는 무궁화에서 사람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습니다.


“프로 축구 무대에 실패한 축구 선수들”


마음에 드는 문장을 찾게 됐습니다. 프로 무대에 가지 못한 축구 선수 지망생들이 모인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블로그를 통해 연락처를 발견해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어설픈 섭외 연락을 보내며 서울로 찾아갔고, 낯선 이들에게 무엇을, 왜, 어떻게 할 것인지 기초적인 제안을 했습니다. 

6월 초 취재보도론에 제출한 새 발제는 통과되었고, 축구단과의 만남은 성공이었습니다.


(축구단 관계자들이 있던 오금역)


(내가 아마추어라 까일까 두근두근했던 아브닐 회사)

 

솔직히 쫄렸습니다. 난 혼자서 그런 걸 해 본 적이 없는데, 할 수 있을까. 말이라도 잘 할 수 있을까. 

내가 너무 아마추어 같아서 거절하면 어떡하나 싶었습니다. 저도 확신의 I입니다. 낯선 사람을 확 끌어당기게 하는 매력 같은 건 없습니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고, 진심을 보였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설득만이 제가 가진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미룰 것 없었습니다. 6월 중순부터 곧바로 촬영에 돌입했죠. 

후에 느낀 거지만 좀 더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면, 촘촘한 촬영구성을 했을 것입니다. 

프로그램 전체를 관통하는 스토리라인을 세워서 말이죠. 

다만, 시간이 없었기에 촬영에 돌입하기 전날 쯤, 무슨 현장이므로 이런 게 있을 것이란 상상과 구상, 

기존 영상물들을 체크하며 어떤 구도와 장면을 찍을지 정했습니다. 

부족한 건 전화로 사람들을 파악하며 메모해 둔 걸 활용했습니다.


(비 오는 날, 갑작스레 찾아가 선수들에게 나를 소개했었던 날)


(갑자기 감독이 선수들에게 설명을 부탁한다면 날 앞으로 불러 모았다. 프로가 됐을 때, 여러분들이 기억하게 될 지금의 순간들을 찍는다고 말했다)



(인터뷰 구도 잡는 게 어떤 건지 공부하고 들어간 날)


(또 다른 인터뷰 현장)


그땐 제가 차가 없었습니다. 

무궁화호와 KTX에 삼각대 2개, 캠코더 1대, 미러리스 1대, 오디오 장비들을 챙겨 맨몸으로 움직였습니다. 

나중엔 서울취재본부에 제가 쓸 장비를 갖다두고, 몸만 움직이기도 했죠. 


그때 여름이라 참 죽을 맛이었습니다. 장비와 이동의 싸움도 미친 듯이 했습니다. 

촬영을 하다 중간에 빠져나와 지하철 보관함에 일부 짐을 두곤 택시를 타고 인터뷰 장소에 조명 장비를 놓고, 

또 다시 돌아와 촬영을 따곤 선수들 집에 가서 촬영을 하고...

식사는 거르기 일쑤였고, 장비를 들고 나르느라 몸은 지치고, 촬영과 오디오에 신경 쓰느라 정신도 날카로워졌습니다. 

하필 교통체증으로 기차도 놓쳐 숙소를 잡고 자기도 하며 애 먼 돈을 쓰기도 했죠. 

지하철역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참 처량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얼마 안 되어 보이지만, 꾹꾹 눌러 담았다. 왜냐면 매고 들어야 해서 적게 많이 갖고 갈 수 없으니까)


(아...진짜 힘들었다)


이렇게 길게 아브닐 다큐에 관해 쓴 건 그 기획과 촬영, 편집이 제겐 세저리 생활 중 하나의 터닝포인트이자, 국면 전환이었기 때문입니다. 작게는 혼자서 기획부터 편집까지 모든 걸 처리할 수 있는 경험을 해보았다는 겁니다. 이전과 스케일이 달랐습니다. 다음으로 동료의 중요성, 각 단계별 중요성을 참...처절히 느꼈다는 겁니다. 영상은 혼자선 할 수 있지만, 퀄리티를 높이려면 결국 동료와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그때 만난 사람들이 인상 깊었습니다. 아브닐 감독이 그러더군요. 


“1년 프로 데뷔해서 하다가 은퇴하면, 그게 프로선수일까요? 

PD님 1년 PD 생활하다 그만 두면, 그걸 프로페셔널 PD라고 말할 수 있나요? 

저흰 10년, 15년 오래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기자와 PD가 되어도 3~5년이면 이직한다고 합니다. 1년차에도 업종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당연히 일이 힘들고, 기대한 것과 다르고, 여러 가지 조건이 안 맞아서겠죠. 처음으로 제 미래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언시라는 고개를 넘어서, PD라는 직업을 갖고난 뒤 1년 안에 떠나게 될까 아니면 오래도록 계속 할까. 

내가 10년 이상 PD라는 직업을 계속하고 싶다면, 지금의 난 무엇을 해야 할까.


(다큐 마지막 부분을 장식한 경기. 이때 폭염경보가 계속 울렸다)


촬영은 9월을 끝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10~12월 약 3달에 걸쳐 편집을 완성했습니다. 

오래 걸린 이유는 다음에 말하겠지만, 기사 취재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운이 좋았습니다. KBS 열린채널에 방영되었고, 돈도 받았습니다. 

단비에서 조회 수도 역대 손에 꼽히게 나왔고요. 물론 아쉬운 게 많지만, 뿌듯합니다. 

어떤 기획과 아이템은 참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듯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기억에 남을 각자의 아이템을 또 이곳에 계신 분들이 만들어 냈으면 좋겠네요.


다음 에피에서 남은 썰 또 풀겠습니다.

제목아이콘이미지  댓글수 6
naver 주냥   2025-01-21 15:01:10
단비 역대급 조회수 콘텐츠 ... 그 이름은 아브닐
naver -   2025-01-21 20:29:09
너무좋다 이런 글... 그의 세저리 생활 ... 다음 에피 기대됩니다.... 빠른 업로드.. 부탁드립니다...
naver 이선재   2025-01-22 15:48:02
역시 포항 박찬호 아직 남은 썰이 많다니 궁금하네요 그만큼 단비에서 열정을 불태운 당신!!
naver 내가 누구게   2025-01-24 13:42:00
다음~~ 다음화~~ 고고고 리얼숲님 손이 쉬고 있는가? 쉬지마쉬지마
naver -   2025-01-24 19:18:01
안쌤의 가르침 아이템을 좇지 마라 문제의식을 좇아라
naver -   2025-01-31 00:31:31
영상 속 선수들 모습처럼 PD님도 취재하고 이동하는 동안 땀을 뻘뻘 흘렸겠군요. 아브닐 선수들과 단비뉴스 PD가 프로를 지향하는 같은 마음으로 용기를 건네는 이야기를 탄생시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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